교회를 오래 다닌다고 반드시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직분이 있다고 변화되는 것도 아니고, 봉사를 많이 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성숙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걸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보았고, 말씀을 들었고, 사역에도 참여했습니다. 심지어 재정까지 맡을 정도로 신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끝내 변화되지 못했습니다.
왜였을까요?
유다의 문제는 예수님 곁에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끝까지 자기 자신을 붙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 유다도 기대를 품고 예수님을 따랐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자신도 무엇인가를 얻게 될 것이라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길은 유다가 기대한 길과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권력을 붙드시지 않았습니다.
높아지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섬기라고 하셨고, 낮아지라고 하셨고, 십자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유다의 마음은 점점 닫히기 시작했습니다.
신앙은 단순히 “내 문제가 해결되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삶의 문제 때문에 교회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더 깊은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내 인생의 해결사인가?”를 넘어
“예수님은 누구신가?”를 알아가야 합니다.
신앙은 거래가 아닙니다.
사랑이며 관계입니다.
사랑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계산이 시작되면 관계는 계약이 됩니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하나님도 이 정도는 해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이런 마음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기 기대를 붙들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자기 기대를 믿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보다 자기 나라를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기대가 무너지자 결국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스스로 물어보아야 합니다.
나는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내 뜻과 내 기대를 붙들고 있는가?
성경은 변화는 능력 있는 사람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여는 사람에게 온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 같은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어린아이 같다는 것은 유치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자신을 열고, 순종하며, 의지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온유는 약함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 고집을 내려놓을 줄 아는 힘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로 그 온유의 절정입니다.
예수님은 능력이 없어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 자신을 굽히셨습니다.
굳어진 나무는 결국 부러집니다.
그러나 부드러운 나무는 살아남습니다.
신앙의 가장 무서운 상태는 예수님 곁에 있으면서도 마음을 닫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십니다.
“네 뜻을 내려놓고 내 뜻을 따르겠느냐?”
부디 가룟 유다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 앞에 어린아이처럼 마음을 여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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